S STORY 

환자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 되려면

최고가 되어야죠

뇌동맥류 수술의 최고 권위자 김용배 교수


김용배 교수(신경외과)의 뒷모습은 흐트러짐 없이 반듯했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평행선의 어깨와 곧추세운 허리, 균형 잡힌 걸음걸이가 인상적이었다. 관리 좀 하느냐는 질문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은사님에게 수술 자세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배웠습니다. 그분은 자세와 걸음걸이가 굉장히 바르고, 수술하실 때도 대단히 세밀하면서도 반듯하셨습니다. 그런 부분을 늘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겉으로도 드러나나 봅니다.”  배운 대로 살아가고 있는 의사 김용배 교수를 만났다. 그는 병원에서 일하기 편한 자기만의 유니폼을 따로 만들어 입을 정도로 매사 섬세하고 빈틈이 없었다.

에디터 이나경 포토그래퍼 최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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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동맥류는 흔히 ‘뇌 속의 시한폭탄’이라고 불립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빨리 수술받는 것이 관건인가요?

저는 시한폭탄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너무 과격한 표현 같아서요. 왜냐하면 ‘뇌동맥류=시한폭탄’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환자는 자기 머릿속에 재깍재깍 소리 나는 공포를 안고 살게 되니까요. 뇌동맥류라 해도 크기, 위치, 모양에 따라 파열 위험이 모두 다르고,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굉장히 높은 경우에만 예방적으로 수술이나 시술을 합니다.

뇌동맥류 전문가의 경험으로 볼 때 파열 위험이 지극히 미미하거나 무시해도 될 정도로 보이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수술이나 시술이 필요하지 않은 환자들에게는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문제도 아닙니다, 잊어버리세요 같은 말로 먼저 안심시켜드리는 편입니다. 환자를 안심하게 하는 것도 전문가의 역할이니까요.


 

머리에 뇌동맥류가 있다고 전부 수술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인데, 그러면 다른 방법은 무엇인가요?

뇌동맥류는 수술이나 시술로 치료합니다. 수술은 머리를 열고 하는 방법이라 환자에게는 공포와 두려움이 있지요. 의학이 발전해서 지금은 시술로 해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전문가는 병변의 위치, 모양, 크기, 환자의 상태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 환자에게 가장 좋은 방법을 제시할 의무가 있습니다. 저는 그 점을 굉장히 엄격하게 다룹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치료 방법의 선택에서 의견이 다른 경우가 있거든요. 환자의 치료 옵션 중 가장 유리한 방법을 찾기 위해 저희 팀은 매일 아침 모든 환자를 대상으로 같이 논의합니다. “과연 이것이 가장 최선인가?” 그 질문을 계속 던지며 엄격하게 확인하고 환자에게 가장 유리한 치료 방법을 다 함께 결정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환자에게 베스트를 찾는 일이 당연한 것 같은데, 의사에게는 어려운 과정일 수도 있겠습니다. 꼭 그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스승님한테 그렇게 배웠습니다. 세브란스 신경외과 뇌혈관파트는 정말 유명했습니다. 그 치밀함과 지독함이 거의 강박적일 정도였죠. 빈틈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뇌혈관 자체가 사소한 실수로도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기 때문이죠. 그 완벽함에서 생겨난 탁월함은 세브란스병원의 유산이자 전통입니다. 그것이 곧 세브란스가 신뢰받는 이유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교수님도 지금 후배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강조하고 계시겠네요.

의사는 경험하고 부딪히면서 성장합니다. 외과의사는 특히 더 그렇죠. 그런데 그 과정은 환자와 연결되어 있고 더러는 불가피하게 환자의 희생에서 배우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경외과 뇌혈관파트는 어마어마한 엄격함이 요구되었고, 환자안전이 무조건 제1원칙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니까요. 몇 해 전 작고하신 이규창 선생님이 제 롤모델이신데, 그분은 탁월함과 엄격함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환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그분의 노력을 직접 목도했고, 수천 건의 수술 경험을 가진 스승의 수술을 옆에서 배웠습니다. 저 역시 후배들에게 그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뇌 수술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어마어마하게 느껴지는데, 직접 수술하는 의사는 어떤 기분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주로 현미경을 보면서 수술하는데, 수술할 때는 마치 온 우주가 정지한 것처럼 완전히 몰입합니다. 최고의 긴장을 가지고 제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끌어다 초집중하면서 수술하는 겁니다. 그 시간이 끝나면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낍니다. 대신 완전히 녹초가 되죠. 그만큼 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며 쉽니다. 가끔 지금 같은 일상이 두렵기도 하고 지칠 때도 있지만, 이런 도전과 성취감이 뇌혈관 수술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든 뇌혈관 수술을 하는 의사의 길을 택하셨을까요?

어렸을 때 엄마 손 잡고 갔던 병원에서 맡은 소독약 냄새, 안경 너머로 저를 보시던 의사 선생님의 눈길이 강렬했어요.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같았습니다. 어린 제가 범접할 수 없는 곳이었는데, 왠지 거기에 강하게 끌렸습니다. 의대에 들어와서는 뇌혈관 수술을 하시는 이규창 선생님, 두개저종양 수술을 하시는 이규성 선생님 두 분이 경이로워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이 길에 선 것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초짜 신경외과 의사로 처음 근무했던 곳의 제 진료실 바로 옆방에서 당대 최고의 뇌동맥류 명의인 이규창 선생님이 진료를 보셨습니다. 세브란스병원을 은퇴하고 제가 일하는 병원으로 오셨던 거죠. 어떤 환자는 저에게, 또 다른 환자는 이규창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는데, 그때 뼈저리게 느꼈죠. 제가 환자들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 되어야 한다고요. 최고와 겨루어 최고가 되는 것이 제 과제였습니다. 그때 다짐한 마음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명의의 특강

뇌동맥류

터지면 치명상, 파열 전 발견과 관리가 최선


뇌동맥류 파열로 인한 뇌지주막하 출혈은 뚜렷한 자각증상이나 전조증상 없이 갑자기 찾아와 대부분이 목숨을 잃거나 치명적인 합병증을 얻게 되는 무서운 질환입니다. 이러한 뇌동맥류의 파열과 출혈을 막기 위해 수술적 클립결찰술과 비수술적 혈관내 색전술이 시행됩니다.

 김용배 교수(신경외과)


평소 건강하고 활달한 성격의 요리사 이 씨. 43세 생일을 맞아 친구들과 간단한 축하 자리를 가진 후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던 도중, 갑자기 머리가 터질 듯한 극심한 두통이 발생해 구토를 했다. 겨우 방으로 돌아온 그는 한숨 돌리며 안정을 취하려고 했지만 두통은 가라앉지 않았고, 급기야 의식을 잃고 말았다. 이씨는 가족들의 신고로 바로 응급실에 이송되었고, 뇌 컴퓨터단층촬영(CT)에서 뇌의 기저조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뇌지주막하 출혈이 발견되었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뇌혈관

예고 없이 터져 치명적 결과 초래


위에 언급한 사례는 뇌동맥류가 파열되어 뇌(지주막하) 출혈이 발생할 때 겪는 전형적인 모습 중 하나입니다. 즉 뇌동맥류 파열은 전혀 예고 없이 전격적으로 발생하며, 파열 당시 현장에서 바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습니다. 또 치료의 기회를 얻더라도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여러 합병증의 고비를 넘어야 하고, 장기적인 치료와 재활이 필요한 대표적인 중증 뇌혈관질환입니다.


뇌동맥류란 뇌동맥의 일부분이 약해져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상태를 말합니다. 부풀어 있는 상태에서 발견되면 ‘미파열’ 뇌동맥류, 앞의 사례처럼 파열되어 이미 뇌출혈을 유발한 경우에는 ‘파열’ 뇌동맥류로 분류합니다. 미파열 뇌동맥류와 파열 뇌동맥류의 치료는 여러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당연히 파열 뇌동맥류의 치료가 훨씬 복잡하고 위험하므로 파열되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치료를 받는 편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미파열 뇌동맥류

증상 자각보다는 검사로 우연히 발견


미파열 뇌동맥류는 제3뇌신경의 마비로 한쪽 눈꺼풀이 감겨서 제대로 떠지지 않거나 크기가 아주 큰 거대 뇌동맥류가 뇌조직이나 뇌신경을 직접 자극하는 증상이 나타나는 매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각 증상이 없습니다. 두통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거나 검진 목적으로 시행한 뇌 컴퓨터단층촬영(CT) 또는 자기공명영상촬영(MRI)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다만 이때 발견된 미파열 뇌동맥류와 평소의 두통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보고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뇌동맥류는 대개 성인 인구의 2% 내외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령, 여성, 가족력이 있거나 결체조직질환과 같은 일부 유전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에 상대적으로 발생 빈도가 높습니다.



파열 뇌동맥류

신속 집중치료로 재출혈과 합병증 막아야


자주 인용되는 통계에 따르면 파열 뇌동맥류는 매년 인구 10만 명당 10-20명에서 발생해 뇌지주막하 출혈을 일으키며, 이 중 25%에서 많게는 50%가 사망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생존자들 가운데 거의 절반은 크고 작은 영구장애를 겪기 때문에 더할 수 없이 혹독한 중증질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청구자료를 기반으로 추정해보면, 국내에서 파열 뇌동맥류로 치료받는 환자는 한 해 평균 약 5천 명에 이릅니다. 파열 뇌동맥류는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마치 건드리면 모든 운명을 집어삼키는 폭탄처럼 위험한 상태여서 수일내에 수술적 클립결찰술이나 혈관내 색전술로 재출혈을 막아야 합니다. 이미 퍼져 있는 뇌출혈은 이후 계속 집중치료를 해야 하며, 이때 합병증을 잘 극복해야 환자가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뇌동맥류 파열로 뇌지주막하 출혈이 일어나면 뇌혈관이 수축하면서 정상 뇌혈류에 장애가 생겨 허혈성 뇌기능장애를 초래하는 혈관연축의 발생 위험이 높으며, 출혈 때문에 뇌척수액의 순환이 나빠져 머리에 물이 차는 뇌수두증도 생길 수 있습니다.



파열 막는 대표적 치료법

클립결찰술, 혈관내 색전술


뇌동맥류 치료는 수술적 클립결찰술비수술적 혈관내 색전술을 시행합니다. 전통적인 수술적 클립결찰술은 개두술을 시행해 조그마한 창을 만든 다음, 뇌의 틈 사이로 현미경을 보면서 세심하게 따라 들어가 혈관이 부풀어 있는 뇌동맥류를 찾아 그 경부를 클립으로 동여매 파열을 막는 방법입니다. 혈관내 색전술은 사타구니 혈관을 통해 가느다란 도관을 넣어 머릿속까지 찾아 들어간 뒤, 도관을 통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뇌동맥류 주머니 안에 매우 가느다란 코일을 채워 넣어 혈류를 차단함으로써 파열을 방지합니다.


혈관내 색전술은 전통적인 클립결찰술에 비해 절개나 뇌조직의 노출 없이 치료할 수 있어 안전하고 회복 속도가 빨라 크게 각광받았습니다. 이후 매우 부드럽고 미세한 코일과 뇌 혈관용 스텐트 등 관련 치료 재료의 눈부신 발전과 시술 술기의 고도화가 함께 이루어지면서 현재는 뇌동맥류의 주된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파열 뇌동맥류의 예방적 치료

파열 위험과 환자 상태 종합적으로 고려


앞서 언급한 대로 뇌동맥류가 파열되어 이미 출혈이 발생한 경우에는 최선의 노력과 최고의 치료를 하더라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때로 치유의 희열이 허락되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환자 본인과 가족, 의료진의 간절함이 허망하게 외면되곤 하죠. 그러므로 아직 파열되지 않은 뇌동맥류를 미리 발견했다면 가혹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입니다. 다만 꼭 치료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클립결찰술과 혈관내 색전술 중 어느 것이 본인에게 유리한지 심사숙고해야 하는 숙제가 주어집니다.


미파열 뇌동맥류는 크기, 위치, 모양과 개수, 환자 나이와 건강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예방적 치료의 득실을 따져 치료 여부를 판단합니다. 뇌동맥류를 진단받았더라도 파열될 가능성이 지극히 적다면 굳이 치료가 필요하지 않으며, 정기적인 추적 검사로 큰 변화가 없는지 점검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만약 치료가 필요한 경우라면 치료 방법에 따르는 위험성과 치료의 내구성 혹은 효과를 균형 있게 고려해 최적의 치료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혈관내 색전술이 첨단 치료법으로 각광받고 있으나 모든 환자에서 시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클립결찰술이 훨씬 더 안전한 경우도 많습니다. 즉 두 가지 치료 모두 각각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어떤 장점을 취하고 어떤 단점을 피할지 의료진과 환자, 가족들 간에 치열한 의논이 필요합니다.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뇌혈관팀

‘최선의 최고’ 치료를 찾는 전문가들


세브란스 신경외과 뇌혈관팀은 미세현미경수술과 혈관내 색전술 전문 교수진 4명을 포함해 전임의, 전공의, 뇌신경센터 외래와 전문 간호사, 뇌혈관 전문병동 및 중환자치료 전담팀 등 고유한 역할을 분담하는 다수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각 분야의 전문성을 고도화하고 서로 유기적으로 협업해 치료 효율을 높이고 있습니다. 특히 매일 아침 회의에서 모든 증례를 논의함으로써 여러 경우의 수와 선택지 중 ‘최선의 최고’인 치료가 무엇인지 합의하고 도출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이렇게 각 분야의 경험과 지혜가 함께 고안해낸 치료 계획은 미세한 득실의 경계에 있어 선택이 어려운 뇌동맥류의 치료에서 장점은 확실히 취하고 단점은 효과적으로 피해갈 수 있는 좋은 방편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