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치료를 잘 받으려면 한 명의 명의를 찾기보다 의사 간 협조가 잘되는 팀을 찾는 게 현명합니다. 유방암은 수술로 한 방에 해결되는 병이 아니거든요. 제아무리 탁월한 의사라 해도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전문 분야에 걸쳐서 환자를 돌보는 건 불가능하고요. 관련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해가면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의치료 성과가 훨씬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설이 분분하다. 유방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이 90%가 넘는다는 얘길 들으면 정복이 코앞에 온 느낌이다. 수술을 받고 5년이 넘도록 별 탈이 없으면 완치라고들 하지 않는가? 그런데 한쪽에선 평균생존율이 길어야 5년 정도라니 갈 길이 까마득하단다. 그럼 5년을 넘기기가 어렵다는 뜻인가? 희망을 붙들라는 말인지, 너무 큰 기대는 말라는 뜻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오랜 내공을 쌓은 고수의 판단은 어떨까? 유방암 치료와 연구의 실력자로 꼽히는 손주혁 교수(종양내과)는 상황을 단편적으로 보고 낙관이나 비관으로 치닫지 말아야 한다고 선부터 긋고 나선다.
그러니까 분명히 말씀해주신다면, 유방암은 완치가 되는 질병인가요?
뭉뚱그려 생각해선 안 돼요. 조기 유방암이 다르고 전이성 유방암이 다르거든요. 그 안에서도 여러 종류가 있고요. 조기 유방암은 완치가 가능한 병이에요.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를 비롯해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서 해결하죠. 암이 다른 자리로 퍼져나간 전이성 유방암은 좀 더 까다로운데, 여기에도 여러 갈래가 있어서 같은 통계치를 적용하긴 어려워요. 평균 5년이라고 하지만 10년 넘게 사시는 분들도 꽤 되거든요. 그래서 지레 포기하고 산으로 들어가겠다는 분들을 보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몰라요. 미리 낙담할 일이 아니거든요.
유방암은 전이가 잘 된다는 얘기가 있어서 더 무서워하는 것 같습니다.
유방암을 생각할 때 두려운 느낌부터 드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되짚어보면, 공포감은 실체를 모를 때 생기는 감정이 아닌가 싶어요. 전이 문제만 해도 그래요. 전이는 유방암만이 아니라 모든 암의 특징이고 가장 중요한 성질이기도 해요. 따라서 얼마나 전이가 잘 되느냐보다 얼마나 빨리 발견해 조처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유방암은 전이 상태에 따라서 병기가 나눠지고 예후도 달라지니, 환자분은 질병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예후를 알면 막연한 무섬증이 한결 덜할 겁니다.
환자 스스로도 병을 제대로 알고 치료에 임하는 게 중요하겠군요.
그래서 환자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저는 시간을 들여 병기와 예후, 완치율은 물론이고 상황이 어려워질 경우의 평균생존율까지 다 말씀드립니다. 물론 보호자의 동의를 구하고 적절한 방식을 선택해서 전달하지만 가능한 한 직설적으로 설명해요. 충격을 받으시는 분도 있고, 그러냐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분도 있고요. 어느 쪽이든 일단 정보를 파악하면 치료에 초점을 맞추고 무얼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느냐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조기 유방암은 수술 후에 항암치료로 완치율을 올리고 재발 가능성을 떨어트리는 과정을,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게는 치료 목적이 기대수명 연장과 삶의 질 향상임을 얘기합니다. 그렇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다 보면 15분이 훌쩍 지나가죠.
유방암의 성격이 그렇게 다양하다면, 거기에 맞설 대책들도 마련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유방암은 종양내과의 꽃이라고 할 만큼 연구가 깊고 치료법도 잘 개발되어 있는 분야입니다. 수술에 항암치료를 병행하는 요법이 완치율을 높인다는 사실이 처음 입증된 것도 유방암에서부터였고, 연구에서 꼭 필요한 암세포주도 초기에는 대부분 유방암 세포주가 개발되었어요. 세브란스에는 아주 특별한 강점이 있어요. 사실, 수술은 유방암 치료의 완결이 아니라 시작에 가깝습니다. 항암치료와 호르몬치료, 방사선치료가 이어지기도 하고 정신건강의학과나 재활의학과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해요. 초음파를 비롯한 영상, 속성과 성질을 분석하는 병리, 재건을 맡는 성형외과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개입해야 하고요. 그런데 세브란스에는 그 모든 분야의 여러 전문가들이 서로 소통해가며 환자를 보는 협력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요. 수술은 물론이고 그 이후까지 책임질 베스트 팀이 꾸려져 있는 셈이죠.
유방암과 싸울 무기는 충분하다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기본적으로는 지금까지 개발된 항암제의 효능과 부작용을 잘 숙지해서 그 지식을 치료에 적용하고, 환자의 치료 반응을 살펴서 치료 효과가 극대화될 때까지 대처해가는 게 종양내과 의사의 몫입니다. 하지만 암 치료가 흘러갈 방향을 알고 있는 전문가로서는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기 때문이죠. 유방암으로 인한 사망률을 더 끌어내려야 하고 전이와의 싸움에서도 더 확실한 승기를 잡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최신 경향에 맞는 첨단 치료법을 환자들에게 적용해서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려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임상시험에 힘을 쏟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임상시험이라고요? 그럼 국내에서도 아직 개발 중인 신약을 써볼 길이 있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아직까지 암 관련 표준치료가 완벽하지 않아서, 많은 환자분들이 여전히 유방암으로 인해 운명을 달리하시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치료 성적을 올리고자 환자와 의료진은 임상시험을 고려합니다. 또 표준치료를 다 사용해서 더 이상 치료 옵션이 없는 환자들도 고려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임상시험은 실질적으로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료진의 판단,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 병원 윤리위원회와 식약처를 비롯한 감독기관의 승인을 두루 거쳐야 합니다. 환자로서는 몇 년 앞선 치료법을 무상으로 적용받을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혹시 알고 계세요? 세계에서 임상시험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도시가 바로 서울입니다. 세브란스는 이 분야에서도 단연 앞서갑니다. 국내에 들어오는 신약은 거의 전부 세브란스의 시험을 거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희 유방암 팀만 해도 연구간호사 26명과 함께 수많은 임상시험과 연구들을 진행 중입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저희가 진행하는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시켜달라고 찾아오는 전이성 유방암 환자분들이 꽤 많습니다.
연구 얘길 하니까 목소리가 달라지시네요. 의사이자 연구자로 사는 삶이 즐거우신가 봅니다.
의사가 된 것도, 종양내과를 택한 것도 무슨 대단한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어요. 주위의 권유로 의대에 입학했고 손재주가 없어서 내과로 방향을 잡았어요. 실습을 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암 환자들을 보게 됐고 그분들을 돕고 싶어서 종양내과에 들어왔어요.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내고 연구를 추진하면서 재미있게 지냈는데, 벌써 쉰 살이 넘었네요. 처음엔 혼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함께하는 식구들도 서른 명이 넘어요. 그 사이에 수술 성적도 좋아지고 약도 더 많아져서 환자를 도울 길도 더 늘어났고요. 그러니 갈수록 더 관심과 집중이 생길 수밖에요.
평생 공부에 매달려 사셨는데, 앞으로 더 연구해보고 싶은 과제가 있으세요?
우선은 진행 중인 중요한 임상시험들을 잘 발전시키고 싶어요. 주도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제약사를 설득해 약을 공급받은 뒤에 여러 기관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몇 가지 있거든요. 두 번째로는 환자의 혈액에 담긴 암 관련 유전자를 분석하는 이른바 액체생검 연구에서 성과를 내고 싶어요. 암은 일찍 찾아낼수록 치료성적이 좋아지는데 액체생검을 통해 일찌감치 암을 발견하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획기적인 도움이 될 겁니다. 혈액검사만으로도 암을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요. 정년까지 매진해서 상용화 단계까지 이르는 게 꿈입니다.

“수술은 유방암 치료의 완결이 아니라 시작에 가깝습니다. 항암치료와 호르몬치료, 방사선치료가 이어지기도 하고, 정신건강의학과나 재활의학과, 재건을 맡는 성형외과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개입해야 하고요. 세브란스에는 이런 전문가들이 환자를 보는 협력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요. 정말 베스트 팀이 꾸려져 있는 셈이죠.”
에디터 최종훈 포토그래퍼 최재인
에디터 최종훈 포토그래퍼 최재인
명의의 특강│전이성 유방암의 치료
임상시험, 전이암 환자에게 희망 주는 최선의 치료
안타깝게도 일부 드문 암을 제외하면, 현대의학으로 전이성 암을 완치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확한 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표준치료와 임상시험을 통해 암을 잘 다스리면서 비교적 편안하게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다.
글 손주혁 교수(종양내과) 포토그래퍼 최재인
전이성 유방암 환자와의 첫 면담
42세 여자 환자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소견서를 보니 유방암 진단에 뼈전이, 간전이가 의심된다는 내용이다. 긴장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 환자와 보호자는 이미 종양내과가 어떤 과인지 알고 왔으리라. PET 사진을 보니 굳이 전이병소 조직검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전이가 분명하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얘기를 풀어야 할까?
살짝 미소를 띠며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시작한다. 유방암 환자인 것을 알고 계시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증상을 물어보자, 환자는 유방종괴와 함께 좌측 골반에 한 달 전부터 통증이 있어서 간간히 타이레놀을 복용했으나 계속 아프다고 한다. PET 소견과 일치하는 부위다. 나는 가족력, 사는 동네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얻고 유방종괴를 진찰한 후, PET 사진을 보여주면서 현재 병의 진행 상황을 설명한다. 전이성 유방암의 의미, 표준치료와 임상시험의 차이, 임상시험으로 얻는 이득과 부작용 등 현재 병 상태부터 향후 치료 계획에 대한 설명을 마치면 15분이 훌쩍 넘어가기 일쑤다. 암 진단의 충격으로 온갖 감정이 교차하는 환자, 보호자에게 제한된 시간 안에 이 모든 걸 충분히 이해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의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에 최대한 잘 이해하실 수 있도록 설명한다. 치료 효과가 좋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전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암세포들이 온몸에
일반적으로 전이성 유방암은 암 제거수술이 필요 없다. 유방종 괴를 제거해도 삶의 질이나 생존 기간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이는 유방에서 시작된 암이 혈관을 타고 퍼져나가는 것으로, 눈에 보이는 간전이, 뼈전이 말고도 눈에 보이지 않는 암세포들이 온몸에 퍼져 있는 상태다. 조기 유방암의 치료 목적은 완치이지만, 전이성 유방암은 생존 기간을 연장하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항암약물치료는 이러한 측면에서 이미 효과가 입증되었다. 전신으로 암이 퍼진 상태여서 수술이나 방사선치료 같은 국소치료보다는 주사나 먹는 약을 통해 항암제가 혈액으로 들어가서 눈에 보이는 암덩 어리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암세포를 죽이는 전신치료를 해야 한다.
대개 여기까지 설명하면 환자나 보호자가 질문을 한다. 얼마나 살 수 있느냐고. 예외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은 약 1년 반, 호르몬수용체 양성이나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은 평균생존율이 5년이다. 하지만 이는 통계적인 수치 일 뿐, 환자의 유방암 특징과 치료 약제에 대한 반응이 중요하 므로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같은 암이어도 치료 약제가 다른 이유
전이성 유방암의 약물치료는 매우 복잡하다. 쉽게 이야기하면 환자마다 치료 방법이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유방암은 크게 호르몬수용체 양성유방암, HER2 양성유방암, 삼중음성유방암으로 구분된다. 호르몬수용체 양성유방암은호르몬치료, HER2 양성유방암은 HER2에 대한 표적치료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삼중음성유방암은 호르몬수용체나 HER2가 모두 없어서 대개 일반 항암치료를 진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시작일 뿐, 환자의 나이, 폐경 유무, 동반질환, 전신 수행 상태, 전이 정도와 부위, 환자의 선호도, 보험 여부 등을 고려해 약제를 선택하며, 여기에 임상시험까지 추가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면 호르몬수용체 양성유방암이라도 간전이가 심하면 호르몬치료 대신 바로 항암치료를 진행하기도 한다. 또 전이가 뼈나 림프절에 국한된 경우는 좋은 예후인자이므로 항암치료를 우선하지 않는 것을 고려한다.
만약 직장생활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지는 약물을 너무 싫어하는 환자가 있다면 이 점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직 보험급여를 받을 수 없더라도 효과가 좋은 신약이 있다면 비용 대비 효과는 물론 환자의 경제적 사정도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매우 많은 사항을 헤아려 약제를 선택하지만,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키고 생존 기간을 연장시킨다는 궁극적인 목적은 같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환자에게 이득을 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판단하는 경우에 임상시험이 진행된다. 특히나 아직 의학적 치료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은 분야인 암, 특히 전이암의 치료에서는“임상시험 등록이 최상의 치료”라는 표현이 미국암협회 홈페이지에 기록돼 있을 정도로 임상시험이 환자에게 도움을주는 경우가 매우 많다.
암과 함께 살아가기
이렇게 결정된 약으로 환자가 오랫동안 치료를 받으면 주치의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사용하는 약제가 효과가 있고 부작용도 견딜 만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몇 주 혹은 몇 달에 한 번씩 외래진료를 통해 치료 효과와 부작용을 확인하고 귀가하는 환자들이 많다. 전이성 유방암을 정복하는 대신 “암과 함께 살아가기”라는 말이 꼭 어울리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반대로 치료 효과가 없거나 내성이 생겨서 나빠지는 환자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 환자들은 진료 시간도 길어지고 2차, 3차 약제를 계속 사용하게 된다. 다행히 약제가 잘 들으면 “암과 함께 살아가기” 상태로 잘 지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환자는 유방암 전이나 약제 부작용으로 인해 힘들어지고 종종 입원도 하게 된다. 더 이상 치료 약제가 없거나 항암치료 자체가 도움이 안 될 것으로 판단되는 환자에게는 완화의료 혹은 호스피스를 권유해드린다. 때로는 뭔가를 하지 않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법이다.
이렇게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약물로 치료하는 와중에 수술이 나 방사선치료가 필요한 상황을 적절히 인지하고 해당 분야의 교수에게 의뢰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다른 암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방암은 정말 많은 전문가들이 같이 일을 잘해야만 환자에게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암, 다학제 진료가 꼭 필요한 암이다.
전이성 암, 임상시험 등록이 최상의 치료
연세암병원 유방암센터에서는 조기 유방암과 전이성 유방암 에서 암의 종류별로, 그리고 각각의 상황별로 약 40개의 임상 시험이 진행 중이다. 다국적 제약사가 의뢰하는 임상시험이 대부분이며, 연세암병원 연구자들을 비롯해 국내 연구자들의 제안으로 진행하는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과 국내 제약사 임상시험도 있다. 과거에는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느냐며 임상시험 권유에 언짢은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도리어 지금은 임상시험을 많이 하는 병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신약치료를 기대하고 찾아오는 환자들이 많다.
임상시험은 신약이 개발되어 실제 환자에게 사용되기 전까지 진행되는 연구 과정의 일부다.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연구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합당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미국의 FDA, 한국의 식약처, 각 병원의 기관윤리심의위원회(IRB) 등 이러한 기관들이 제약사나 연구자가 제안한 임상시험 계획을 검토하고 승인한 후에만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다.
일부 언론에서 임상시험 도중 나타나는 부작용을 부각시켜 공포감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는데, 부작용은 모든 약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반대급부다. 이러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환자에게 이득을 줄 수 있다고 전문가 들이 판단하는 경우에 임상시험이 진행된다. 특히나 아직 의학적 치료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은 분야인 암, 특히 전이암의 치료에서는 “임상시험 등록이 최상의 치료”라는 표현이 미국암 협회 홈페이지에 기록돼 있을 정도로 임상시험이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매우 많다.
지난 10여 년간 암 치료 분야에서 다양한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 좋은 신약들이 많이 개발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암 치료 분야에서는 임상시험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임상시험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병원이 암 환자에게 새로운 희망을 더 많이 줄 수 있는 명품 병원일 것이고, 이것이 세브란스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임상시험 단계별 특징과 대상
임상시험은 크게 1상, 2상, 3상으로 구분된다. 실험실에서 암세포, 동물실험을 거쳐서 개발된 항암제는 1상 임상시험을 통해 처음으로 환자에게 투여되는데, 여기에 해당되는 환자는 기존의 항암제를 모두 사용해서 더 이상 쓸 약이 없는 분들이다. 환입장에서는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비록 부작용에 대한 정보도 없고 효과도 낮을 가능성이 높은 신약이더라도 많은 환자들이 참여를 원한다. 2상 임상시험은 1상 임상시험에서 결정된 용량, 용법으로 투여된다. 1상 및 실험실 연구 결과를 분석해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특정암 환자들에게 수십 명 단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안전성과 효능 면에서 1상 임상시험보다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3상 임상시험은 수백 명에서 수천 명 단위로 진행되는 대규모 연구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며,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엄청난 연구비가 투입된다. 3상 연구에서 효능이 입증되면 FDA 승인을 거쳐서 환자에게 약을 적용할 수 있다. 3상 연구는 1, 2상을 거친 만큼 환자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신약이지만(약 40%가 FDA 승인을 받는다), 비교연구이기 때문에 절반 정도의 환자들은 신약 대신 표준치료를 받는다. 신약을 원하는 환자로서는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표준치료를 하더라도 경제적 부담 없이 치료받을 수 있고, 언제든 주치의와 연락해 상의할 전담 연구간호사가 배정되므로 여러면에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